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폰 노이만 (문단 편집) == 일화 == 폰 노이만 인류 역사상 손 꼽히는 천재이며, 그의 학문적 업적들이 뛰어나다는 것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고, 노이만 본인 역시 다방면에 걸쳐서 비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폰 노이만과 함께 일했던 IBM사의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컴퓨터 코드 50자리를 머릿속에서 처리했다고 한다. 다만 후술되어있는 핵폭발의 에너지 계산에 관한 일화 등 과장되어있는 이야기 역시 일부 있다는것.] 하기에 서술한 관련된 일화들은 사실이 과장되거나 후대에 와서 지어낸 얘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이 문단에 쓰여있던 글들인 "트리니티 핵실험 당시 폰 노이만이 폭발 에너지를 암산으로 가장 근접하게 맞추어 [[엔리코 페르미]]가 칭찬했다"는 것은 외국의 작가가 만들어낸 소설로 실은 엔리코 페르미가 가장 근접하게 맞혔다.[* 실제 위력은 20~22킬로톤, 페르미는 10킬로톤, 노이만은 5킬로톤. [[페르미 추정]] 항목 참고]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를 암송해보라고 하니까 멈추라고 할 때까지 30분 가량 외웠다는 일화는 책 원문을 그대로 암송한것이 아닌, 실제로는 요약본만 암송한것이다. 노이만 뿐 아니라 대체로 많은 위인들이 그들의 업적과 관련된 일화에서 사실무근인 경우가 허다하니 무조건적으로 믿지는 말자. * 어릴 때, 부유했던 집에서 파티를 하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워서 읽어주는 묘기를 하였다. 또, 파티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이름, 주소, 전화 번호를 물어보고 집에 갈 때 문 앞에서 한 명씩 인사하면서 저 정보를 다 읊어줬다고. * 7개의 외국어를 모국어같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발음도 원어민과 흡사하였다.[* 폰 노이만의 유일한 육성 녹음을 들어보면 영어 발음이 완벽하지 않다.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어릴 때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에 오면서 좀 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 유진 위그너는 노벨상을 받을 때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존 폰 노이만이란 말을 했다. 기자가 위그너에게 “왜 [[헝가리]]에는 그렇게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위그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천재]]가 많다니요? 천재는 오직 존 폰 노이만 한 사람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기자의 질문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많은 학자들이 헝가리에서 나왔다. 유진 위그너, 에드워드 텔러, 레오 실라르드(실라드), 테오도어 폰 카르만, 에르되시 팔 등이 있다.] * 하지만 유진 위그너는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 중 누가 더 천재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플랑크, 폰 라우에, 하이젠베르크를 알았고, 폴 디랙은 제 형제였습니다. 실라르드 레오와 에드워드 텔러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폰 노이만만큼 두뇌회전이 빠르고 날카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종종 그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었고 아무도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해력은 폰 노이만의 이해력보다 더 깊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폰 노이만보다 더 핵심을 관통했고 더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에 특별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두 가지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입니다. 반면에 폰 노이만은 그런 영민함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독창적인 것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 김나지움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어느 연구 기관이든 동료들은 그의 압도적인 천재성을 인정했다.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계산력과 암기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 뛰어난 수학자였던 포여 죄르지는 [[취리히]] 대학에 다닐 적 폰 노이만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예전에 그가 있던 클래스에서 강의할 때, 어떤 정리를 소개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아마 꽤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폰 노이만은 5분 후 가만히 손을 들더니 칠판에 나와 증명을 바로 써 내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폰 노이만을 두려워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비슷한 일화로, 한 교수가 증명되지 않은 정리를 수업에 설명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폰 노이만이 증명한 종이를 들고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 동료가 어릴 때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읽은 《[[두 도시 이야기]]》를 암송해보라고 하니까 멈추라고 할 때까지 30분 가량 외웠다. * 동료 물리학자인 에이브러햄 파이스[*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전기를 썼다.]는 [[맨해튼 계획]] 후 오펜하이머 사건 때, 존 폰 노이만과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이자 8개 국어로 시와 소설을 쓰고 클래식 작곡도 상당한 수준인 무시무시한 천재다.] 안 좋은 사이를 보며 오펜하이머가 폰 노이만의 재능에 대해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서술했다. 냉정하게 보자면, 오펜하이머와 폰 노이만의 갈등은 오펜하이머의 일방적인 질투가 아니라 원자폭탄의 실전 투입에 대한 두 사람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원폭의 실전 투입을 반대했고 오히려 폰 노이만이 실전 투입을 주장하는 강경파였다. *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 및 수학자들은 모두 반강제로 감금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유일하게 폰 노이만만이 너무나 일이 많아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가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때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막힌 부분을 들고 찾아갔고, 그러면 폰 노이만은 마치 볼링핀을 쳐 넘어뜨리듯 문제를 해결하거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 또, 위의 물리학자가 쓴 일화로, 또 다른 뛰어난 수학자 친구가 며칠 동안 밤을 새서 푼 문제를 갖고 폰 노이만에게 장난을 치려고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숨긴 채 같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폰 노이만이 문제를 순식간에 술술 풀어나가고 동료 수학자가 밤을 새워서 풀었던 가장 어려운 부분만 남겨놓자 화난 수학자가 답을 말하고 나가 버렸다. '''1분 후''' 폰 노이만은 그가 말한 답이 옳다고 말한 뒤 '''30분 동안 어떻게 자신보다 빨리 풀었는지 고민하다가''' 물리학자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자 그제야 웃으면서 밥 먹으러 갔다는 일화도 있다. * 괴팅겐에서 [[다비트 힐베르트]]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된다. 양자 역학의 형식주의에 힐베르트 공간을 도입한 인물은 힐베르트가 아니라 폰 노이만이다. 폰 노이만은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키려는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시도를 냉소했고, 한 이론의 무모순성을 증명 체계 속에서 증명하려는 힐베르트의 시도에 역시 회의적이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시도는 다수의 수학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힐베르트의 시도는 [[쿠르트 괴델]]의 등장으로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실은 폰 노이만 역시 괴델의 아이디어를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힐베르트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이쪽의 시도를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한 사람도 노이만 한 사람뿐이었다. 정리 직후 노이만이 한 말은 '다 끝장났군요!'였다.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표현. * 에이브러햄 파이스는 폰 노이만보다 위대한 인물은 만나 봤지만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동료들도 동의했다. 참고로 에이브러햄 파이스는 천재들의 시대에서 유명한 천재란 천재는 다 만나 본 사람이다. * 폰 노이만이 자문을 해주었던 군사 협력 업체에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고민하다가 폰 노이만한테 물어봤는데 그는 ''''컴퓨터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라며 잠깐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더니 종이에 몇 줄의 식으로 완벽한 해답을 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라고 말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 누군가[* 그 누군가가 [[막스 보른]]이라고 유진 위그너가 말한다. https://youtu.be/gn3U9G0gfu4?t=1102 ] “200마일 길이의 철로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두 대의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이때부터 두 기차가 서로 충돌할 때까지 [[파리(곤충)|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도로 두 기차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파리가 이동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일까요?”라는 질문[* 현재 열차와 파리 문제 일화는 조건이 매우 다양한 값들로 변형되어 널리 퍼져 있다.]을 폰 노이만에게 했다. 폰 노이만은 잠시 생각한뒤 150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실망하면서 “역시 당신은 속임수에 걸리지 않는군요. 대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무한급수를 이용해서 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간단한 논리를 이용해서 파리가 2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알아내면 금방 풀리죠. 당신은 그렇게 풀어낸 거죠?”[* 쉽게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br]기차가 서로를 향해 각각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이동하므로 200마일 떨어져 있는 두 기차가 만나는 데에는 2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파리도 경로와 상관없이 시속 75마일로 총 2시간 동안 이동했으므로 총 이동 거리는 75×2=150마일이 된다.] 폰 노이만: '''“아뇨.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 무한급수로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br]파리와 같이 출발하는 전차를 A, 반대편 기차는 B라 할 때 파리는 기차보다 1.5배 빠르므로 파리와 B가 만나는 지점은 [math(\dfrac{200마일}{1+1.5}×1.5=120마일)]이며 걸린 시간은 [math(\dfrac{120}{75}=1.6)]시간 이므로, 1.6시간 동안 각 기차들은 [math(50×1.6=80)]마일을 움직였기에 두 기차 사이의 거리는 [math(200-(80×2)=40)]마일이다.[br]이때 시간이나 파리의 이동 거리 중에 어느 것을 초항으로 잡느냐에 따라 방법이 조금 달라진다. 남은 거리가 40마일이므로 처음 거리의 1/5의 상태가 되며 이를 통해 공비가 0.2가 됨을 알 수 있다. 무한급수의 공비의 절댓값이 1미만일 때 [math(\dfrac{초항}{(1-공비)}=무한급수)]의 합이라는 공식을 이용하면 [math(\dfrac{1.6시간}{(1-0.2)}=2시간)] 이 나오며 [math(75마일×2시간=150마일)] 또는 [math(\dfrac{120마일}{(1-0.2)}=150마일)]이다.[br]또한 짝수 번째 항이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공비는 -0.2가 되는데 무한급수의 합은 총 이동거리가 아닌 파리의 현재 위치로 계산할 수 있다. [math(\dfrac{120마일}{1-(-0.2)}=100마일)]이 되며 정확히 중간 지점이 되므로 위의 과정이 맞음을 증명한다.] 이 문제는 고등학교 이과 수학의 등비수열 수준의 문제이나 폰 노이만이 무한급수를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머릿속에서 초항부터 계산해서 전부 더했을 가능성도 있다. 후에 [[리처드 파인만]]도 동일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파인만은 이미 폰 노이만의 일화를 알고 있었기에 쉬운 풀이로 답을 구해놓고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를 시전하는 능청을 부렸다. 참고로 파인만도 대단한 천재였지만 폰 노이만과 같이 살아있는 컴퓨터처럼 암산을 하는 타입의 천재는 아니었다. 교과서에도 실리곤 해서 일반인들도 흔히들 아는 그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 * 한 번은 자기 컴퓨터와 "천의 자리가 7인 최초의 2^^n^^을 찾는 계산 대결을 했는데, '''노이만이 이겼다.''' 답은 n = 21 (2^^21^^ = 2,097,152). 아무리 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굼벵이였던 시절이지만 대단한 것이다. *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의 초창기 * 개발자들은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했기에 탄도 미사일이라는 것이 어떤 물건이 될지 개발 과정이 맞는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이 와중에 누군가 '노이만에게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개발자들은 몇 개월간 연구한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갔다. 노이만은 그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개발자들이 "그럼 얼마 후에 방문하면 될까요?"하고 물어보자 "아, 거기 잠깐만 앉아 보세요."하고 말하며 2시간 동안 자료를 뒤적거리다가 종이와 펜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은 완벽했다고 한다. * 개발 도중, 한 학자가 수백 장의 보고서를 들고 폰 노이만에게 찾아갔다. 폰 노이만은 보고서를 앞 장을 빠른 속도로 읽고 갑자기 뒤에서부터 대충 몇 장 넘기더니 "이 구상은 너무 허무맹랑한데요, 사람 손으로는 불가능하고, 신이라도 쉽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곧바로 그 이유에 대해 완벽히 설명해 주었으나, 그 학자는 납득하지 못하고 노이만을 이겨보겠다는 욕심에 2달이나 더 매진하고는 그제서야 진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 말년에 폰 노이만은 “현대 수학은 매우 복잡합니다. 당신은 과연 현대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노이만은 이 질문에는 그답지 않게 한참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가 '''“28퍼센트.”'''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고작 28%?’라고 의문을 품기 전에 잘 생각해 보자. 대개 ‘알면 알수록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 학문의 길인데, 저렇게 구체적인 비율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나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100%가 어느 정도인지 윤곽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답이다.] * 이렇게 너무나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를 두고 주변 사람은 혹시 그가 [[악마]]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 했지만 이에 대해 동료 수학자는 단 한마디로 반박했다. '''“악마가 인간을 연기한 것이라면 그렇게 연기를 못 할 리가 없다.”'''[* 만약 인간을 초월한 한 존재 악마가 자신을 숨기고 인간을 연기한다면, 인간미 넘치는 일반인을 완벽하게 연기했을 것이다. 폰노이만처럼 '나는 괴물같은 천재입니다'라고 광고는 안했을테니.] * [[엔리코 페르미]]의 부인은 “요니(노이만의 애칭.Johnny)는 뒤에서 험담을 듣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사교적, 재능적 면에서 흠을 잡기는커녕 완전무결했기 때문. * 책 리만 가설을 보면 폰 노이만은 [[여자]]와 [[스포츠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위인이라고 나온다. * [[비서]]의 책상 앞부분을 없애놓고 가끔씩 허리를 숙여 비서의 [[치마]] 속을 보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것을 눈치챈 비서가 조용히 마분지로 책상 앞을 가려 놓았다고 한다. * 아내와 [[영화]]를 볼 때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뉴스는 정말 집중해서 봤으나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자 버렸다고 한다.[* TV 보급 전까지 영화관에서 뉴스를 틀어주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야인시대]]에서 [[심영(야인시대)|심영]]이 연극 전에 뉴스를 상영하겠다 한 것이 그 예.] 그 후 나와서 아내가 영화에 대해 물어보면 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한다. 영화의 서두만 보고 추출한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였지만, 아쉽게도 영화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서 매번 걸렸다고 한다. * 폰 노이만의 운전 실력은 좋지 않았다. 그가 차로 나무를 들이받은 뒤 경찰이 오자 [[특수 상대성 이론|"길가의 나무들이 일정한 속도로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가 내 앞에 나타났다." 라고 진술했다. 다만 스포츠카를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다 보니 형편없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 인생의 대부분을 [[불가지론]]자 혹은 [[냉담자]]로 살았지만, 죽기 직전 암으로 투병 중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가톨릭 신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이러한 개종은 평소 건강할 때의 발언이나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그의 [[병자성사]]를 집전한 [[신부(종교)|신부]]에 따르면, 그 자신은 개종으로 그다지 큰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노이만은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파스칼의 내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 그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동생이 [[파우스트(희곡)|파우스트]] 독일어 원문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이 읽다가 잠시 멈췄을 때, 폰 노이만이 다음 구절들을 읊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기억력에 관련된 마지막 일화이다. *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도 폰 노이만이다. 정확히는 동료였던 스타니스와프 울람(Stanisław Marcin Ulam)이 1958년 폰 노이만의 사후에 그에 대해 회고하며 쓴 글에서 언급되었는데 "(그와 나눈) 한 대화는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현 인류의 양상을 넘어서게 할, 점점 다가오고 있는 어떤 필연적인 인류사의 특이점을 출현시킬 항구적으로 가속되고 있는 기술진보 및 그에 따른 인류의 생활상의 변화에 대한 것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One conversation centered on the ever accelerating progress of technology and changes in the mode of human life, which gives the appearance of approaching some essential singularity in the history of the race beyond which human affairs, as we know them, could not continue.]라고 하였다 한다. * 별명 중에 [[반신]](半神, Demigod)이 있다. 두뇌가 인간의 영역이 아니란 소리. 프린스턴 대학에서 떠도는 농담 중 "폰 노이만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하고 완벽히 모방할 수 있는 반신이다."가 있다고 한다. [[https://www.nytimes.com/1992/02/10/books/books-of-the-times-is-this-theory-about-games-or-life-well-both.html|#]] * 노이만은 디지털 컴퓨터의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컴퓨터는 늘 거대해서 강대국 정부만이 소유할 수 있을것이며[* 천재적인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건지 모든 곳에 컴퓨터가 내장될 미래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어디 있지? 50쪽. Stephen Webb 저. 한승 출판사], 핵무기를 만들고, 기후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에 쓸 수 있다고 여겼다.[* 날씨를 좌우하는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동원한다 해도 현실적인 시간 안에 모든 계산을 완료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한다.] * 후덕한 몸매 때문에 그의 아내는 '''"이런 수학천재도 정작 자기 몸 칼로리는 계산하지 못 한다."'''라고 [[팩트폭행]]을 날렸다. * 노이만은 컴퓨터를 사용할 때 기계어로만 프로그래밍을 했다고 한다. 어셈블리어나 포트란이 나온 뒤에도. 물론 이 때 기계어 코딩을 하던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기계어만 있을 때었으니. 한편 존 폰 노이만의 제자가 어셈블리어를 만들자 폰 노이만이 노발대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작 그런 거로 컴퓨터님(…)의 성능을 낭비하려 한다나 뭐라나. 물론 이 당시 컴퓨터의 위상은 요즘 기준 수십억원대 최고급 연산장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단위로 한, 두개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성능을 낭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기에 폰 노이만 같이 기계어로 자유자재로 코딩이 가능한 효율이 높은 괴수가 많이 필요한 시대였다는 점도 있다. 세월이 지나고 심하게 비효율적인 코드도 높은 성능의 하드웨어와 컴파일러의 효과로 준수한 성능을 내기 때문에, 컴퓨터 한 대가 프로그래머 한 달 월급보다 싸진 요즘은 예전과 반대로 프로그래밍의 효율이 훨씬 중요하게 취급된다. * 후술 할 내용은 존 폰 노이만과 함께 연구했던 존 브로노프스키라는 과학자의 회고이다. 원폭 투하 후 버섯구름이 생기는 걸 보고 존 브로노프스키란 과학자가 왜 버섯구름이 생기는지 궁금해했는데, 노이만에게 왜냐고 묻자 2차 미분 결과라서 당연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가서 밤을 새워서 계산을 해서 아침이 되어 노이만의 이야기가 맞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는 흥분해서 오전 10시에 노이만에게 당신의 말이 맞았다면서 전화를 걸았다. 하지만 노이만은 그런 당연한 이야기로 아침잠을 깨우지 말라며 문전박대를 했다고 한다. 이후에 존 브로노프스키는 유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거기서 노이만을 비판했다. 그의 게으름으로 인류문명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고. 그가 연구와 기술에 온 힘을 쏟았다면 인류문명이 수십 년은 앞서갔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신은 왜 [[게으른 천재|그런 게으름뱅이에게 재능을 주었는가]] 라면서 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